(포탈뉴스)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이 발간되었다. 저자 박재성은 50여년 간 한문만 연구해 온 한문학자이다. 저자는 훈민정음이 그저 박물관의 유리 상자 속에나 진열된 유물쯤으로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어떻게 하면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써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특히 2020년에 출판된 '세종어제훈민정음 총록'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훈민정음해례본의 어제 서문과 정인지 서문의 내용이 세종실록과 여러 곳에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서부터 세종실록을 원본으로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한문으로 쓰인 세종실록에 대한 번역이 상당 부분 잘못되어 있다는 것과 훈민정음 관련 기사 중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한 집현전 학사들에 대한 조명이 정치적 이유로 그 빛이 가려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한몫했다고 강조한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신숙주의 박학다식함과 8개 국어에 능통한 실력에 더해 성실함과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훈민정음 창제가 순탄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임에도 신숙주는 성종 이후 사림파가 정계에 진출하면서 세종의
(포탈뉴스) 한글날의 시작은?오늘은 574돌 한글날이다. 그런데 한글날의 유래를 살펴보면 조선어연구회가 1927년 기관지 ‘한글’을 창간하면서부터 ‘가갸날’을 ‘한글날’로 개명하게 되었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되자 조선어연구회(나중에 한글학회가 된다)는 자신들이 제정해서 기념해왔던 ‘가갸날’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을 깨닫고, 이 원본의 서문에 훈민정음 반포일이 ‘정통 11년 9월 상한’이라고 기록돼 있는 것을 근거로 음력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해서 기념해 오고 있다. 그런데 한글날의 이름이 한연구단체의 기관지 이른바 회지의 제호에 서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이 아니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다. 우리는 왜 역사를 중요시하는가? 그 까닭은 기록에 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간의 기록이 아닌 정부의 공식 기록일 때 그 사료에 대한 중요성과 역사성은 공인의 신뢰도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래서 조선 500년의 역사가 기록된 세종실록에 “전하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시고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셨다”고 천명되어 있다. 더욱이 훈민정음은 28자이고 한글은